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갈리폴리 전투 (문단 편집) === 영국의 전투 준비 === 이제 영국에게는 다르다넬스 해협을 돌파해 코스탄티니예의 독일 함대를 전멸시키고, 대신 자신들의 전함이 파디샤의 궁전을 주포로 조준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게 되었다. 전시내각이 해야 할 일을 판단했으니, 이제 군에게 지시할 차례였다. [[영국 해군]]장관(First Lord of Admiralty, Board of Admiralty[* [[영국 해군]]의 직책. 1400년 경 창설되었으며, 1964년 전쟁부(국방부)로 통합되어 없어졌다. 1941년 당시의 직책은 제1해군경 = 해군참모총장, 제2해군경 = 해군인사부장인 식으로 제5해군경까지와 그외의 직책으로 이루어진, 해군 군정(軍政) 부서와 군령(軍令) 부서가 통합된 형태였다.]를 총괄하는 직책) [[윈스턴 처칠]]은 십수 척의 [[전함]]과 수십 척의 [[수송선]], [[순양함]] 등으로 이뤄진 대함대를 몰고 적의 저항을 간단히 무시하며 그대로 오스만 해안으로 쳐들어가 단숨에 병력을 상륙시켜 최종적으로는 [[이스탄불|코스탄티니예]]까지 밀어버린다는 작전을 수립했다. ...여기까지는 좋았을 것 같지만 계획이 지나치게 원대했기에 반발 또한 엄청났다. 독일 육군의 지원으로 완전히 요새화된 다르다넬스 해협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해군이 막대한 [[함포]] 사격으로 [[해안포]] 진지들을 제압하고, 이를 이어 육군이 상륙해 잔존병력을 소탕하면서 코스탄티니예까지의 진로를 열어야 했다. 한마디로 육해군의 절대적 협력이 필요했는데, 육군의 주력을 구성할 프랑스군은 물론이고 영국 해군 지중해 함대 사령관 새크빌 카든 제독까지 싸우면 피해가 클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처칠은 해군만으로 그냥 밀어버리겠다는 단독작전을 수립해버렸고, 일은 이미 이 단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다만 처칠의 갈리폴리 안건 말고 있는 작계가 해군경 피셔의 북해 안건이었는데, 세계 2위의 독일 해군 + 독일 본토의 해안포 요새 가 있는 독일 본토 상륙작전인지라 상대적 선녀인 갈리폴리가 선택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